성인은 나이 어린 학습자에 비하면 왜 영어 배우기가 힘들까? 미국에 살면서 늘 생각하는 질문이다. 

 

신랑 직장으로 갑자기 낯선 이 나라에 살면서, 낯선 언어인 영어는 나를 늘 힘들게 한다. 

처음부터 영어는 내가 좋아해서 배우고 싶은 언어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서예를 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비주얼 요소가 많은 -상형문자- 한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어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언어이다.

철자가 쓰여 있는 데로 발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강세도 생각해서 발음을 해줘야 하며, 글자를 바라본다고 어떤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애매모한 이뻐할 수 없는 언어. 

알면 알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언어가 영어였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나이 어린 학생들에 비해 나는 왜 영어를 배우는 게 힘들고, 어려운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아직도 영어를 공부하고, 영어 허덕이고 힘들어하고, 그리고 남들에게 이렇게 내세울 어떤 공부를 이루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영어를 배우는 성인 영어 학습자 한 사람으로 '성인이 왜 영어를 배우기 힘든지'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한다. 

모호성에 대한 관용  Tolerance of Ambiguity 

언어 학습 측면에서 '모호성에 대한 관용' 정의는 제2 외국어 학습자가 배우고자 하는 언어의 복잡함과 모호함에 대해 초조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학습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것을 하나하나 찾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이해하고 추측해서 넘어가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것이 언어를 배우는 데 기여를 한다는 의견이다. 모호성이 낮은 학습자보다 모호성의 관용이 높은 학습자의 경우 이런 애매한 부분이 나왔을 때  힘들어하지 않아, 계속된 학습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넘겨 짓기만 할 경우 언어 습득 면에서는 역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모호성에 대한 관용이 높다고 언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또한 학계의 의견이기도 하다. 

 

언어라는 것이 수학 공식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언어의 복잡함과 애매함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대목인데, 사실 나는 이 모호성에 대한 관용을 언어적인 면보다는 정신적인 면에 더 적용을 시키고 싶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길고, 많은 인풋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것을 신체적, 정신적 성장과 발달이라는 기간 속에서 같이 하는 반면, 성인인 경우 영어를 배울 경우 신체적, 정신적 성장과 발달이 끝난 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아이들처럼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인간의 본능처럼 자연스럽기보다는 개인 선택에 의한, 의도적인 면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결과에 집착하게 되는데, 하지만 노력과  언어의 결과물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언어 학습의 모호함이 성인 영어 학습자가 영어 공부를 중도 포기하게 하고 또는 시작하기 힘들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 영어를 배우면서 나도 그랬던 적이 몇 번 많았다. 뭔가 되는 것 같은데, 또 지나 보면 제자리에 있고, 하는 만큼 결과는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반복을 싫어하고, 게으른 나에게는 모국어가 아닌 또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가당치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학교를 가는 것이었다. 적어도 학교를 가면 비싼 수업료를 내고 영어로 공부를 해야 하고, 점수가 나와야 그 과목을 통과하니, 영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강압적인 환경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강압적인 환경적 요소 덕분에 지지리 부진했던 나의 영어는 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좋아졌다. 현재도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인 사정에 한 학기에 한 과목씩 듣고 있지만, 이것마저 안 했다면, 지금 내가 하는 영어는 하지 못 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한 없이 게을러지기도 했는데, 특히 방학 동안 영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영어로 하는 것이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또 나름 이야기를 쪼개 분석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영어로 책 읽기는 단순히 영어 공부가 아닌, 그냥 그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단지 언어가 한국어에서 영어로 바뀌었을 뿐, 책을 읽고 생각하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과정은 한국어로 하는 책 읽기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영어를 배우면서 가장 감사한 부분이 영어로 책 읽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문학 자체가 인간이 가지는 감정과 인생의 모호함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모순되게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를 그려내는 것이라.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작가의 의도를 내 눈으로 읽어 낸다면 아무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나도 알게 모르게 모호함에 대한 관용성이 높아져 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대충 넘기는 것에 대한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영어 100권을 읽었지만 단어 양이 읽은 책 양에 비해 많지 않다던가 하는- 이것에 대한 주의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영어 원서 100권을 읽으면 어떻게 될까

2018년 후반기부터 시작했던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를 통해 나는 체계적인 책 읽기를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막무가내식으로 책을 읽었었다. 마음에 있으면 몇 권이고 마구 읽고, 또 책 읽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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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작가가 쓴 글을 잘 읽고 싶은 바람이 커서 단어 공부를 정말 미미하지만 계속하는 편이고, 문법 공부도, 문학 분석이나, 영어 글쓰기 책들도 꾸준하게 읽고 공부하는 편이다. 이것이 전에 처럼 학습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기기 위해 도구를 구하고, 연마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제는 영어의 복잡함, 모호함, 모순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영어 말하기 클럽에서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멕시코에서 온 할머니가 나에게 영어를 배우는데 권해 주고 싶은 책이 뭐가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할머니에게 책을 권해주기 전에  할머니에게 책 읽는 걸 좋아하냐고 물어봤었다. 

할머니가 책 읽는 것을 단순히 영어로 배우기 위해 한다면, 나는 오히려 할머니가 지금 하고 있는 걸 영어로 하라고 권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홈 가드닝을 좋아하면 가드닝 쇼를 영어로 보면서 정보를 얻고, 그에 관련된 잡지나, 책을 읽고, 도서관에 가드닝 클럽이 있으니 나가서 친구도 사귀시라고 이런 활동이 영어를 배우는 데 가장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왜냐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다른 언어로 하면  공부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면서 영어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과 관련이 없는 학습은 기억 속에서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에게 가장 관련 있는 분야로 영어를 배우기를 시작하면,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과정을 즐기게 되어 이런 영어 학습이 오래 기억되고 또한, 영어의 모호함을 관용하는데 가장 좋은 매개 장치가 된다. 

 

언어 학자 크라센이 제2외국어 학습자 95%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법과 읽기를 통해 언어를 배우는 데 실패하고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왜냐면 일단 재미가 없고, 개인과 관련이 없는 주입식 학습이 되어버려, 언어 습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한국의 영어 교육에 잘 맞는 예측이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나머지 5%는 어떨까? 만약 학습자가 문법을 너무 좋아한다면, 그것이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면,  문법 또한 하나의 매개체로 학습자가 언어를 학습이 아닌 습득으로 배우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인이 영어를 배우기 힘들 점 중 하나가 성인이 영어 공부하는 목표가 부정확해서 중도 포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단순히 '영어를 잘하고 싶다'라는 목표보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목표, '문법 책 10번 낭독하기' 또는 '영어 일기 매일 쓰기' 등등으로 정하고 한 달 별로, 주 별로, 일 단위로 쪼개서 목표를 실천하라는 조언을 한다. 

이런 조언들은 결국에는 노력과 결과가 확연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작은 목표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하면서 영어의 모호성을 받아들이고 중도 포기가 아닌, 언어 공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꾸준함 즉, 장기간 공부를 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굳이 시험이나, 어떤 성과를 얻어야 할 영어 공부가 아니라면, 이런 방법들과 함께 취미 생활을 영어로 하면 오히려 더 꾸준하고, 길게 그리고 더 많이 영어를 접하면서 영어란 언어를 습득하지 않나라는 의견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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