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라고 써 놓으니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인데, 지금은 정말 어제 같이 느껴지는 10년이었다.
성격이 뭐 읽었는지 적어 놓고 읽기보다는 생각의 흐름대로 마구잡이 식으로 읽는 스타일이다 보니 10년 동안 무슨 책을 읽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 불과 2년 정도밖에 안 되어서 뭘 읽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대충 10년 동안 읽어 본 영어 원서 책을 되짚어 본다.
최근에 너무 유머스러운 책을 읽고 있어서 이번 포스팅은 그 책 영향이 좀 있을 것 같다.
무려 10년 전에, 신랑이 미국에서 일 자리를 잡아 약간은 핑크빛 미국의 꿈을 품고, 보통 미국 사람은 자연을 만끽하러 여행만! 가는 깡촌에 이사하게 된다.
내 인생 처음으로 내 살색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해 준 곳이었다.
나는 푸른 어항에 노란 금붕어가 되어, 그 깡촌에서 영어도 못해, 친구도 없어, 한국 드라마 다운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게 더 가능성이 있을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아무 즐거움도 없는 환경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특히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로맨스 금단 증상을 느끼며 영어를 하겠다고 교보 문고에서 샀던 영어 원서 로맨스 소설을 처박아 놓은 책 속에서 발견.
삼.일.만.에 완독 한다.
이때 영어 책을 읽을 때 환경과 흥미 또는 금단 증상이 영어 레벨을 극복하는 걸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을 더 쉽게 읽었던 것은 그전에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어서였는데, 하지만 대충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만 세세한 디테일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단어 하나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그냥 나는 사랑이 궁했고, 사랑을 찾아 미친 듯이 읽어 버렸다.
게다가 영어 공부하겠다고 저 책을 산 게 무려 그 당시엔 4 년 전이었는데, 그 4년 동안 책을 펼칠 생각은 하지 않다가 로맨스에 굶주려, 삼일 만에 완독 한 걸 보고 나란 인간은 처절하게 환경적 동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로 로맨스 소설을 읽을 수 있음을 알고부터, 원래도 로맨스 소설광이던 나는 도서관에서 로맨스 책을 빌려 미친 듯이 읽기 시작했다. 밤에 곰과 붉은 꼬리 여우가 나오는 깡촌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즐거움이 영화 보고, 책 읽는 거라,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과 함께 미친 듯이 로맨스 신간을 빌리기 경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야드 세일 같은 거 하면 아줌마들이 로맨스 소설을 한 권에 500원씩 팔아서, 가끔 사서 읽고, 도네이션 하거나 재미있으면 소장해서 읽고 또 읽었다.
로맨스 소설도 장르가 다양한데, 나도 모를 신데렐라 증후군이 있었는지, 백작, 공작, 왕자가 안 나오면 안보는 스타일이라 그쪽으로 읽다 보니,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BBC 드라마도 영어 자막 키고는 미친 듯이 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 1년 동안 읽은 영어 로맨스 소설이 못 해도 족히 50권은 넘었을 것임)
그 당시 트와일라잇이 한 창 붐을 일 때라 뭔가 해서 사서 봤더니 (그 당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기에는 너무 줄이 길었음- 이때 당시 동네 할머니, 아줌마, 틴에이져들 등 동네 인구 반이 줄을 섰었음) 그동안 중세 시대 로맨스를 너무 많이 읽었는지, 너무 쉽게 읽히는 놀람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영어 원서 읽기에 대한 벽은 정말 허물어진 것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영어 책 따윈 다 읽을 수 있구나 하고 자신감이 정말 붙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로맨스 영어 책 읽는 걸로는 인생에 뭔가 안 차는 것 같아서 미국에서 새로운 취미 생활을 찾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성격이 취미 생활 시작하기 전에 그 관련 책부터 읽고 정보를 수집한 뒤 취미 생활을 하는 성격이라 (어설픈 완벽주의자), 취미 생활을 위해 관련 영어 원서 책과 잡지를 읽기 시작한다.
처음엔 미국에서 카드 사는 게 너무 비싸서 시작한 카드 메이킹 취미 생활이었는데, 결국 평생 살 카드 값만큼 책과 재료에 지출하게 된다.
동네가 모든 사람이 빵을 굽는 분위기라, 빵이라도 구우면서 동네 친구라도 만들어 볼 겸 제빵 취미 생활을 시작했었다. 역시 책 중독자답게 빵 만드는 것보다 책을 더 많이 사서 읽었던 취미 생활이었다. 이때 이스트와 글루텐과 같은 미생물 성장 촉진에 대한 글을 읽기도 했다.
결국 그 깡촌에서 친구는 만들기는 중간 성공만 하고 신랑의 직장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렇게 취미 생활 영어 원서 읽으면서 획득했던 기술로 그 결과물을 만들어-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 박스를 만들고, 크리스마스에는 나름 크리스마스 베이킹 박스를 만들어- 때 마다 새로 이사 간 이웃들에게 돌리기도 했었다. 결국 이렇게 돌린 게 동네 사람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영어 원서 읽을 때 하는 조언으로 책을 남이 추천한 것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흥미 있는 주제로 읽으라고 한다
취미 생활 원서 읽기를 하면 제일 좋은 점은 나랑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 내가 그 주제에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외국인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랑 비슷한 공통점이 있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고 또 친해지게 되는데, 그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지 표현할 영어를 모른다면 그 기회를 놓치게 된다. 영어 스피킹이 사무적이고, 업무적인 것도 있지만, 사실 대화, 소통적인 면으로 볼 때 남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필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자신에게 흥미 있는 분야로 영어 원서를 읽으면 착실하게 그에 관련된 영어 단어나 동사를 쌓아 갈 수 있어서, 자신과 비슷한 흥미를 가진 외국인과 소통하며 친구로 발전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왔었다.
취미 생활로 만난 내 절친 D양.
이사 온 동네에 몇 년 동안 서로 마주치면 인사만 적당히 나누던 사이였는데, D양과는 우연히 몇 년 전에 내가 로맨스 덕밍 아웃을 하면서 평생 친구가 되었다. 내가 덕밍 아웃을 하자마자, 자기 집에 오라며 자신의 책장을 보여주며 자신도 로맨스 덕밍 아웃을 함.
둘이 중세 시대 로맨스만 읽는 취향을 가진 흔하지 않은 사람으로, 문학 덕후에, 책 사는 중독자.
우리는 그렇게 절친이 되어 분기별로 북 세일과 북 페스티벌을 다니면서 책 사냥을 가고, 서로 실수로 2권씩 산 책을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가드닝으로 동네 가드닝 하는 아줌마들이랑 가드닝 연대를 맺게 되었다. 이 분들은 싹 틔우기 힘들다는 씨를 가져와서 온갖 방법으로 싹을 틔우시는 분들인데, 한 분은 마스터 가드닝 자격증을 가지셨고, 한 분은 은퇴한 역사 교수님으로 식물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자랑해서 셋이 만나면 무조건 두 시간 이상 수다다.
행동보다 생각이 많은 편이라 늘 취미생활도 책으로 먼저 했던 사람인데, 이게 이렇게 이득이 되어 사람의 인연을 맺게 될지 몰랐다.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그런지 가드닝 아줌마들이 하는 이야기를 다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고, 읽었지만 몰랐던 발음 정보도 차근차근 쌓아가게 되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다가 미국 생활 5년째에 학교에 갈 생각 했다.
뭔가 이렇게 즐겁게 보내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뭔가 허망할 것 같기도 해서, 처음부터 영어를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에 영어 테스트를 보고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ESL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 동안 학교에서 전공책 공부와 요구하는 리딩을 계속하면서 흥미 있는 분야로 책은 꾸준하게 읽었던 것 같다.
처음 읽었던 영어 로맨스 소설이 너무 강렬했었던지, 내가 흥미만 있으면 영어 원서 책들은 레벨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수업 들으면서 리서치 페이퍼를 몇 개 쓰면서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가뭄 해결 전문가가 되고, 미국 리사이클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더불어 음악과 인간의 성격에 대한 상관관계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때 읽었던 책들은 학교 다니고, 숙제에 내느라 급급해서 기록으로 남긴 건 별로 없다.
그 밖에도 여러 매체로 영어 읽기를 했는데, 신문은 쿠폰 때문에 구독을 하면서 읽고 싶은 기사 위주로 현재도 읽고 있다.
신랑이랑 둘이 잡지 구독하는 걸 좋아해서 이코노미스트와 아틀랜틱 그리고 소잉 잡지, 가드닝 잡지를 꾸준하게 구독했는데, 현재는 이코노미스트와 사이콜로지 투데이만 구독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년 전 쯔 음 일주일에 한 권 책 읽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었다. 권 수로는 한 130? 권 정도 읽은 거 같다. 이때 어린이 원서도 읽고 싶어서 북 클럽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10년 미국 이민 생활 동안 활자와 함께 지내온 느낌이 드는데, 그냥 로맨스 책이 읽고 싶어서 영어 원서 읽기를 했고,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재료가 뭔지 알고 싶어서 영어 책을 읽어 현지 정보를 얻을 려고 했고, 학교에서는 강제적으로 읽고 썼었다. 그러다 보니 전에 한국어로 읽었던 고전들도 작가의 언어인 영어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읽고 있는 중이고, 원래 사회,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사회 체계에 관련된, 이민, 빈곤, 주택 문제 같은 책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5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가 왜 아직도 힘들까 해서 현재 언어학 관련 책도 읽기 시작하고, 고민하고 있다.
이건 죽을 때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것 같지만 말이다.
10년 동안 영어 원서 읽기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생각의 확장이다.
질문과 흥미가 있다면, 책을 읽으면서 그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고, 흥미에 반응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깡촌에 있었을 때 나는 작은 점에 위에 있었다면 10년 책을 읽는 동안 그 점이 점점 커져가 지금은 커다란 동그라미 위에 서 있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를 어떻게 더 넓혀갈지 알고 있다.
영어 원서 읽기는 영어 실력만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볼지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넓혀준다.
중세 시대 백작들이 어떻게 비밀리에 마차에서 데이트를 했는지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스트도 일종의 무좀과 같은 곰팡이 균이라 어둡고, 따뜻하고, 습기를 좋아하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공통분모가 있으며, 결국엔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단어로 다 모아진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10년 동안 영어 원서 읽으면서 느낀 것은 영어 책 읽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책 읽는 것을 즐기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을 즐기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이렇게 지속적으로 영어 원서 읽기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철저하게 환경적 동물이라 미국이라는 환경이 나를 이렇게 반 강제적으로 영어 원서 읽기를 시켰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이 한국에서 자발적인 영어 원서 읽기를 한다면 -어떤 영어 레벨의 책을 읽던, 어떤 주제로 영어 책을 읽던- 당신은 나보다 훨씬 멋진 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10년을 미국에서 책 읽으면서 살았는데, 앞으로 이 여정이 끝날 것 같진 않다. 끝나지 않는 여정이지만 앞으로 어떤 책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두근두근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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