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내가 사는 주변 도서관에는 무료 영어 회화 클럽이 있다. 매주 열리는 영어 회화 클럽은 영어 레벨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수업으로 자원 봉사자 선생님과 1시간에서 2 시간 정도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열린다. 미리 참가 예약을 할 필요가 없어서 어떤 날은 참가 학생들은 18명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4명이 되기도 한다. 

꽤 많은 카운티 도서관들에서 이런 수업이 매주 열리기 때문에, 어떤 러시안 새댁은 일주일 내내 이런 무료 수업을 찾아 다닌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열정에 혀를 둘렀는데, 나는 주로 집 주변 가까이 있는 도서관에서 열리는 영어 회화 클럽을 간다.  

벌써 한 몇 년째 가고 있는데, 듬성 듬성 가는 지라 학교 다닐 때는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고, 방학 때는 꽤 열심히 가기도 했다. 

 

몇 주 전에는 갔던 영어 회화 클럽에서는 영어 악센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워낙 다양한 이민자들이 있는 지역에 살고 있어서, 나만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터키, 멕시코, 엘사바도르, 브라질, 우크라이나, 일본 등등 정말 여러 나라 학생들과 함께 영어로 이야기 했다. 

처음 내 목소리가 굉장히 소프트하다는 이야기를 봉사자 선생님으로 부터 들으면서 영어 악센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원래도 목소리가 중저음 이긴 한데, 영어를 하면서 더 중저음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확실히 영어로 말하는 목소리 하고 한국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살짝 다른데, 아무래도 영어 모음을 발성 체계가 한국 모음과 틀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목소리를 가지게 된 것 같다고. 게다가 개인적으로 피치 사운드를 워낙 좋아하지 않아서 더 뭉게는 감이 있긴 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렇게 참 섬세하게 영어로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대충 이런 의도로 영어로 이야기 했다.) 

 

이런 내 이야기를 듣던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맞아, 한국 사람 영어 못알아 들겠더라고'

'진짜 무슨 소리인줄 모르겠어' 

다들 한마디씩 하는데, 모두들 한국인 영어 발음을 이해하는데 힘든 시간을 가진 듯 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인도 사람 영어 악센트가 정말 나는 힘들던데, 한국인 영어 발음이 정말 듣기 힘들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토네이션적인 면에서는 조금 힘든 감이 있긴 하지만 (물결치는 대화 그래프를 보면 어쩔땐 소리가 너무 과하게 나에겐 이렇게 까지 말을 해야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발음이? 

 

그래서 전에 한국분들과 함께 했던 영어 회화 수업을 생각해 봤다. 

그분들이 했던 영어를 되새겨보니, 발음보다는 뭔가 보여줘야 겠다는 급한 마음에 단어를 던지시는 모습이 생각났다. 

물론 나는 한국인이라 그분들이 말 할려는 의도가 뭔지 다 알 수 있었지만, 외국인 학생 입장에서는 무슨 이야기 인지 전혀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발음보다는 문장의 체계가 정확하지 않아서 더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보였다. 

 

가끔 한국분들을 만나면, 너무나 영어를 잘 해야겠다는 모습이 보여서 보통 회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단어를 쓰거나, 또는 발음을 너무 굴리거나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에서 영어가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어떤 언어라도 개인의 언어 활용도가 사회적 위치와 교육정도를  나타내준다- 더 힘들게 접근하시는 거 같았다. 

단순히 영어를 서로를 알아가는 소통의 툴로 생각하면 쉬운 단어와 쉬운 문장으로 상대방과 감정과 표현을 나누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데, 마치 숙제 검사를 받아야 하는 느낌으로 하는,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영어 말하기를 힘들 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러다보니 언어의 가장 순 기능인 소통의 영어보다는 보여주는 영어를 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얼마 전에 들었던 라디오 쇼에서 Jeannie Rice 인터뷰에서 그녀의 달리기 열정을 쉬운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19살에 미국으로 이민 온 그녀는 그 이후로 부동산 중개업자 일을 했는데, 한국을 방문 후, 살이 너무 쪄서  40살 정도에 달리기를 시작. 현재 71살의 나이로 70+ 하프 마라콘 대회에서 월드 레코드를 깼다. 

물론 미국에서 비지니스를 하시고, 또한 남편분이 미국분 이시기도 해서, 영어를 잘 하시는 건 너무 당연하겠지만, 그녀의 인터뷰를 들으면 정말 쉬운 단어와 간단한 문장으로도 자신이 어떻게 시작하고 마라톤 트레이닝을 했는지 이야기 하시는데, 물 흐르듯 이야기 하시는 영어가 너무 잘들렸다. 간간히 한국식 발음 억양이 들려서 당연히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라 한국 이민자가 영어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반가움이 더 많았다), 그녀의 인터뷰에서 그녀의 열정과 힘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정말 너무 좋았다. 

 

영어에서 네이티비즘 Nativism이 너무 강조 되어서, 마치 우리가 미국인이 되어야 하는 것 처럼 가르치지만, 사실 한국식 영어 발음을 완벽하게 지우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과연 그것을 지워야 하는 것일까? 내가 미국인이 꼭 되어야 하는 걸까?

영어의 소통이 가능하다면 이 것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인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이민자들을 만나면 그들의 강한 악센트에도 당당하게 영어로 말하는 걸 본다. 글로벌한 지금은 모두의 영어가 존중 되어야 되지 않을 까 생각한다. 인도인의 영어, 한국인의 영어, 독일인의 영어, 멕시코인의 영어 등등 말이다. 

 

앞으로도 발음 공부는 열심히 하겠지만, 나는 절대로 내가 미국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목소리가 더 중저음이 된 것은 사실 더 미국 사람 스러워졌기 보다는, 대화 상대방을 배려 하기 위해서 이다. 

그것이 미국인이 되었든, 인도인이 되었든, 엘사바도로인이 되었건 듣는 상대방이 내 영어를 더 쉽게 듣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야 내가 말하고 싶은 감정을, 의도를 전달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응형

+ Recent posts